나쁜 도시는 없다.

2021. 4. 4. 15:20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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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동쪽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조지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중 시리아와 이라크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여행 금지 국가로 방문, 체류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위험하다.'는 이야기와 '터키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화하기 힘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터키의 동쪽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터키 친구에게 물어봤다.
 '터키의 동쪽은 어때?' 
 '너무 아름다운 곳이야. 그곳은 터키가 아닌 것 같아. 그쪽에는 시리아 사람들과 다른 아랍 사람들이 많아. 모두가 위험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조심해야 해.'

 터키 친구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의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에 '조심해야 해.'라는 말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터키 친구에게 물어보기 전 찾아봤던 가지안테프와 넴루트 산, 반 호수, 이삭 파샤 궁전은 터키 여행 중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터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3분 뒤 터키 동부로 가는 루트를 정하는 나를 발견했고 날씨로 그리고 좋은 사람들로 마음을 너무 따뜻하게 만들어 줬던 안탈리아를 두고 메르신으로 떠났다. 키프로스 섬과 마주 보고 있는 메르신은 항구 도시로 탄 투니라는 음식이 유명한 곳이다. 안탈리아에서 메르신 까지는 꽤 멀다.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했고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두 끼를 해결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의 이동으로 너무 피곤했고 첫날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다음날, 환전과 터키 친구가 꼭 먹어봐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던 탄 투니를 먹기 위해 밖으로 발을 옮겼다. 여전히 터키의 날씨는 맑았고 바다를 따라 만들어진 공원 어귀에 깔린 산책로를 걸었다. 10분쯤 걸었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다.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확신한 순간 주눅 들었다. 환전과 탄 투니. 이 두 목적을 빠르게 해결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 휴대전화로 지도를 빠르게 살폈다. 그런데 지나가던 20대로 보이는 남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손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는 터키어 실력이 형편없는 나에게도 '이건 욕이야.'라고 표정과 억양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두 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 주머니를 강제로 뒤지려고 하는 사람, 자전거로 위협하는 사람 등 여러 상황이 있었고 '위험하다.'라는 결론이 내려진 순간 숙소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여행지나 차별은 있었다. 그런데 위험함을 느끼고 숙소로 돌아온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내게로 쏟아진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차별 때문이었다. 숙소에 도착 후 나는 곧장 사랑스럽고 따뜻했던 터키에 대한 배신감을 품은 채 메르신에 살고 있는 터키 친구에게 연락했다. 
'메르신은 너무 위험한 곳인 것 같아.'
'무슨 일이야.'
 터키 친구에게 짧은 시간 동안 겪었던 일련의 많은 상황들과 환전과 끼니도 해결 못하고 숙소로 돌아온 처지를 설명했다.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여기는 시리아 사람들도 있어. 특히 그 사람들은 조심해야 돼. 조금 있다가 만나자. 나랑 같이 다니면 괜찮을 거야.'
 터키 친구의 긴 몇 줄의 답장은 간단히 '그럴 줄 알았어.'였다.

 꼼짝없이 숙소에서 기다렸고 2시간이 지나고 터키 친구와 만났다. 먼저 가까운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터키 여행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했어. 그래서 터키를 너무 좋아하게 됐는데 메르신이라는 도시 때문에 그 마음이 사라지려고 해.'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네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만났던 사람들은 아마 시리아 사람이거나 다른 나라 사람일 거야.'
 친구는 나를 위로해줬고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며칠 뒤에 메르신을 둘러보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는 위로가 됐지만 메르신에서 겪은 일들이 터키의 동부로 떠나려 했던 마음을 사그라들게 했다. 그리고 혹시나 나 때문에 친구도 나쁜 상황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내 긴장을 풀지 않았고 숙소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 긴장이 풀렸다.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침대에 쓰러진 채로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엉켜 한참 꼬여있을 때 지금 머물고 있는 이 곳 메르신도 터키라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터키를 여행하면서 어떤 도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사실과 '오늘은 단지 나쁜 사람들을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만나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여행을 둘러봤을 때 어떤 도시에 머물었던 며칠을 기억할 때 느끼는 따뜻함은 좋은 사람들 때문이었고 그렇지 않은 곳은 이탈리아의 남부와 더불어 나쁜 사람들을 만났던 곳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 거리가 없는 도시는 없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이름 다른 많은 도시들은 빛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난히 아름다웠던 도시와 아름답지 않은 도시를 구분 짓게 되는 걸까? 그 기준은 어쩌면 아름다운 건물, 풍경, 거리를 나누는 개인적인 취향보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되짚어보면 나에게 아름답지 않은 도시는 없었다. 도시마다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도시는 기억 속에서 더 빛날 뿐이었다. 

 세상에 나쁜 도시는 없었다. 단지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

 악마의 재능이란 별명의 래퍼가 있었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의 Lo-fi 한 음악과 서정적인 음악을 넘나들며 음악적 역량을 펼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 어린 천재 XXXTENTACION의 Moonlight을 들으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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