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공감대

2021. 3. 25. 22:14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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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안탈리아를 지나 알라니아에 가서 서핑을 하려고 했다. 터키 친구가 연결해 준 서핑숍에서 이제 파도가 없어 서핑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고 안탈리아로 가기로 했다. 무계획을 지향하지만 목적지가 정해지면 이따금씩 알아보는 편이라 버스 터미널에서 안탈리아를 검색했고 '터키 최고의 관광지', '300일 이상 화창한 지중해 도시', '아름다운 유적지와 올드 타운'이라고 사람들이 비유한 안탈리아로 출발했다. 4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안탈리아는 현대식 트램과 나란히 달리는 버스들 너머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드리아누스 문이 보이고 그 옆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 쌓인 구시가지 칼레이치에서는 일렉트로닉 기타와 드럼 소리가 울리는 펍이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안탈리아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어젯밤 지나쳤던 하드리아누스 문을 시작으로 안탈리아의 구시가지 칼레이치를 둘러봤다. 하드리아누스 문은 안탈리아의 랜드마크이다. 로마 시대 때 세워진 아치형의 문은 당시 안탈리아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하드리아누스 문은 기둥에서 두 가지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데 오더가 양피지의 양쪽이 돌돌 말린 모양으로 우아함이 돋보이는 이오니아식 양식과 오더가 아칸서스라는 식물의 잎사귀가 휘감은 모양으로 화려함이 돋보이는 코린트식 양식을 볼 수 있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아치 천장 아래를 지나쳐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무로 된 미닫이 창문들이 누런색 외벽 중간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고풍스러운 주택들과 상점들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간판들이 흔들거렸다. 정말 유럽스러운 골목골목을 지나면 아주 오래전부터 배들의 쉼터였던 칼레이치 항구가 있고 그 너머로 칼레이치 성벽을 목도리처럼 걸친 지중해가 보였다.  
[오더(Order)는 주두, 기둥의 머리이다.]

 언제 봐도 멋진, 해지는 지중해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끼도 안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맛집을 찾아 블로그를 뒤지지 않고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을 무작정 들어가는데 재미를 붙인 나는 야외에 4개의 테이블이 놓인 작은 레스토랑을 발견했고 터키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 사이 마지막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 닭요리 한 가지와 터키 사람들이 'Trucker beer'라고 말하는 Efes 맥주 하나를 시켰다. 닭요리가 나오고 Efes를 반쯤 마셨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장발의 남자가 마이크와 기타를 세팅하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터키 노래가 연속해서 이어지다가 Muse의 Time is running out 도입부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작은 공연을 하던 남자는 나에게 눈빛을 보내줬고 나도 두 손을 모아 고맙다는 표현을 했다. 그 남자는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고 자리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어?'
'나 한국사람.(Ben Koreli).'
이 대답 이후로 나의 터키어가 짧은걸 알아차린 남자는 영어로 말했다.
'남쪽이야 북쪽이야?'
'맥주를 마셨더니 까먹었어.'
 웃음이 번졌다.
'나는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왔고 터키를 여행하는 중이야.'
'오 멋지다.'
'혹시 날 위해서 한 곡만 불러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어떤 노래?'
'난 지금 Eagles의 Hotel California가 너무 듣고 싶어.'
'좋은 곡이야 친구.'

 자연스럽게 우린 서로 친구가 됐고 그 친구는 맥주 한 모금을 급하게 들이켜고 다시금 기타를 잡았다. 'On a dark desert highway' 첫 소절이 시작되자마자 따라 불렀고 후렴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에서 모든 테이블이 함께 부르며 머리 위로 손을 좌우로 흔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노래가 끝나고 나를 위해 노래해준 친구와 그 친구의 테이블에 합석해있던 사람들과도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 음식값을 계산하고 남은 돈으로 노래해 준 친구에게 맥주 한 병과 그 친구가 기분 나쁘지 않게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온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내는 작은 공연비'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Hotel California를 부르며 찍은 영상을 몇 번씩 되돌려 봤다. 국적을 넘어 그리고 종교를 넘어 개인적으로 함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어주고 하루의 멋진 마무리를 선물해 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누군가와 공감대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것이었다.

 도입부의 일렉트로닉 기타 연주와 묵직한 선율의 베이스 그리고 그 매력으로 내가 베이스 기타에 빠지게 했던 노래. 기타 연주자가 보컬인 게 대부분인 밴드와 달리 드러머가 보컬인 Eagles의 Hotel California를 칼레이치의 노을을 보며 감상하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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