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타스 해변

2021. 3. 5. 13:53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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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쉬에서의 두 번째 날 하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덕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발코니로 나갔을 때 전날 늦은 오후와 다르게 한산해 보이는 작은 광장과 항구가 보였다. 아이보리 색 건물의 외벽들은 햇빛이 반사되어 저절로 눈썹과 광댓살을 눈 주위로 모이게 했다. 몇 분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가 숙소의 무선 인터넷을 연결해 며칠 만에 '문명의 맛' SNS 속에서 허우적 대다 우연히 카푸타스 해변의 사진을 봤고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카푸타스 해변의 사진에는 '사랑스러운 해변', '멋진 해변'과 같은 헤시 태그들이 줄지어 달려있었다.
'가자.'
 마음의 결정이 서자마자 채비를 하고 나가서 카푸타스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다. 지도 상으로 꽤나 가까웠던 해변은 생각보다 멀었고 오히려 페티예에서 카쉬로 올 때 들렀던 칼칸이라는 도시에서 훨씬 가까웠다.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길어서 언제 타도 요금이 정직했던 터키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터키에는 'Taksi'라는 단어가 써진 간판과 함께 노랗게 칠해진 작은 사무실이 거리마다 있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Merhaba. Ben Kaputaş Plajına gidiyorum.(안녕하세요. 저는 카푸타스 해변을 가야 합니다.)'
 자신 있게 터키어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영어로 대화해야 했다.
'편도야? 아니면 왕복이야?'
'편도도 상관없지만 왕복이 더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터키 전화번호가 없어요.'
'카푸타스에서 몇 시에 되돌아올 거야?'
'2시간만 놀고 돌아올 거예요.'
'그래 그럼 지금 1시니까. 3시 30분까지 해변 입구로 나와있어.'
'그럼 요금은 반만 내고 3시 30분에 나머지 반을 드릴게요.'
'당연하지. 내가 안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리고 나는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런 짓 하지 않아.'
 빈말일 수도 있었지만 괜스레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런 짓 하지 않아.'라는 말이 따뜻했다.

 30분 남짓 우리나라의 동해안 7번 국도처럼 터키 남부 지중해를 옆구리에 끼고 뻗은 해안도로를 이동했고 카푸타스 해변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터키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서로 찍어주고 있었다. 카푸타스 해변은 매력적이다. 상아색 기암절벽과 기암절벽 사이에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그 앞에는 지중해 바다가 찰싹대고 있었다. 해변을 입장하기 위해선 계단을 내려가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두 칸씩 세 칸씩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그리고 선베드를 빌리려고 했는데 머리가 흰 터키 아저씨가 한국어로 말했다.
'이십 리라.'
 나는 터키어를 아저씨는 한국어를 쓰려하다가 결국엔 서로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오랜만에 입 찢어지게 웃었다. 재미있게 놀다가란 손짓을 보낸 아저씨를 뒤로하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시원했고 멋지기보다 예뻤다. 투명한 바다가 양쪽으로 솓은 절벽이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섬들도 모든 게 예뻤다. 수영을 하다가 일광욕을 하다가 노래도 듣다가 다른 여행자의 강아지와 인사도 하다가 3시 30분이 됐고 아쉽게도 돌아가야 했다. 믿음 반 의심 반으로 기다리던 중 멀리 택시가 보였고 카쉬로 되돌아가는 해안도로 위에서 생각했다.
'의심했던 건 부끄럽지만 오늘도 멋진 만남들이 있었어.'

  즉흥적으로 갔던 카푸타스 해변, 우연히 만난 사람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찾아보니 카푸타스 해변에서 봤던 섬들이 그리스였고 터키 해변에서 그리스를 보며 수영했다는 것 모든 게 좋은 오늘 하루가 내가 계획 없이 여행을 하는 이유다. 블로그를 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과 끝까지 계획했던 여행에서 블로그의 글만큼 누군가의 이야기만큼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너무 많은 계획과 너무 큰 기대는 때론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해변과 내리쬐는 햇빛엔 무조건 라틴음악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정박이 강조되는 반복적인 리듬과 라틴음악 특유의 흥으로 내적 댄스를 불러일으키는 Don Omar의 Danza Kuduro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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