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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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도시는 없다.
터키의 동쪽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조지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중 시리아와 이라크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여행 금지 국가로 방문, 체류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위험하다.'는 이야기와 '터키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화하기 힘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터키의 동쪽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터키 친구에게 물어봤다. '터키의 동쪽은 어때?' '너무 아름다운 곳이야. 그곳은 터키가 아닌 것 같아. 그쪽에는 시리아 사람들과 다른 아랍 사람들이 많아. 모두가 위험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조심해야 해.' 터키 친구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의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에 '조심해야 해.'라는 말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터키 친구에게..
2021.04.04 -
안탈리아 마지막이 아쉽지 않았던 이유
안탈리아에 투자하기로 한 시간은 딱 4일이었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딱 하루가 남은 날이었다. 안탈리아와 안탈리아 주변으로 둘러볼 곳은 많았다. 그중에 관심이 쏠렸던 곳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살았던 올림포스 산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산 키메라였다. 하지만 비수기 때의 여행은 선택지를 제한적으로 만들었다. 발품 팔며 들렀던 모든 여행사에서 일반 투어는 일정 인원이 차야 진행이 가능해 비수기에는 진행이 어렵지만 프라이빗 투어는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깃털 같은 주머니 사정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이 함께하는 투어는 결론적으로 불가능했다. 숙소의 인터넷을 이용해 차선책을 검색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떨었다. 평소에 항상 얌전했던 휴대전화가..
2021.03.25 -
안탈리아 공감대
원래 안탈리아를 지나 알라니아에 가서 서핑을 하려고 했다. 터키 친구가 연결해 준 서핑숍에서 이제 파도가 없어 서핑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고 안탈리아로 가기로 했다. 무계획을 지향하지만 목적지가 정해지면 이따금씩 알아보는 편이라 버스 터미널에서 안탈리아를 검색했고 '터키 최고의 관광지', '300일 이상 화창한 지중해 도시', '아름다운 유적지와 올드 타운'이라고 사람들이 비유한 안탈리아로 출발했다. 4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안탈리아는 현대식 트램과 나란히 달리는 버스들 너머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드리아누스 문이 보이고 그 옆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 쌓인 구시가지 칼레이치에서는 일렉트로닉 기타와 드럼 소리가 울리는 펍이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
2021.03.25 -
카푸타스 해변
카쉬에서의 두 번째 날 하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덕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발코니로 나갔을 때 전날 늦은 오후와 다르게 한산해 보이는 작은 광장과 항구가 보였다. 아이보리 색 건물의 외벽들은 햇빛이 반사되어 저절로 눈썹과 광댓살을 눈 주위로 모이게 했다. 몇 분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가 숙소의 무선 인터넷을 연결해 며칠 만에 '문명의 맛' SNS 속에서 허우적 대다 우연히 카푸타스 해변의 사진을 봤고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카푸타스 해변의 사진에는 '사랑스러운 해변', '멋진 해변'과 같은 헤시 태그들이 줄지어 달려있었다. '가자.' 마음의 결정이 서자마자 채비를 하고 나가서 카푸타스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다. 지도 상으로 꽤나 ..
2021.03.05 -
한국인이라 창피했다.
"나 이제 한국이 싫어질 것 같아." 지진을 겪은 후 이틀이 지난 아침 터키 친구들이 하나 같이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도, 한국이 좋아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대가 없이 도움을 주는 친구도, 한국인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 중인 친구도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터키 지진을 다룬 우리나라 인터넷 기사 댓글을 캡처한 사진들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터키도 이슬람이잖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죽어도 괜찮아.' 몇몇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일컬으며 지진으로 인한 터키 사람의 죽음을 합당하다고 말했다. 한 동안 저런 댓글들이 상단에 머물러 있었고 한..
2021.01.23 -
인샬라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 혹은 '알라의 뜻대로'라는 의미이다. 나에게 인샬라는 물음표를 잔뜩 띄워 던진 말에 게으르게 돌아왔던 부메랑이었다. 이번 여행 첫 숙소에서 건물 전체의 인터넷이 끊겨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을 때, 예약한 투어 날짜의 일기예보가 먹구름과 빗방울이었을 때, 에어비엔비 호스트를 처음 만나던 날 왜 늦게 왔냐고 물었을 때 '어쩌겠어.'라는 표정과 인샬라는 함께였다. 그래서 인샬라를 우리나라의 '내가 그런 거 아니야.'정도의 핑곗거리로 생각했다. "인샬라." 배낭을 메고 이스탄불을 떠나려는 나에게 호스트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도 인샬라였다. 그때 알았다. 인샬라는 핑곗거리가 아니란 걸. 깊이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이 나의 여행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202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