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마지막이 아쉽지 않았던 이유

2021. 3. 25. 22:22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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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탈리아에 투자하기로 한 시간은 딱 4일이었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딱 하루가 남은 날이었다. 안탈리아와 안탈리아 주변으로 둘러볼 곳은 많았다. 그중에 관심이 쏠렸던 곳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살았던 올림포스 산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산 키메라였다. 하지만 비수기 때의 여행은 선택지를 제한적으로 만들었다. 발품 팔며 들렀던 모든 여행사에서 일반 투어는 일정 인원이 차야 진행이 가능해 비수기에는 진행이 어렵지만 프라이빗 투어는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깃털 같은 주머니 사정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이 함께하는 투어는 결론적으로 불가능했다.

 숙소의 인터넷을 이용해 차선책을 검색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떨었다. 평소에 항상 얌전했던 휴대전화가 떤 이유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SNS 메시지로 안탈리아에 거주하는 한국인 부부라고 말을 떼신 이름 모를 분은 혼자 힘들게 배낭여행하는 한국 젊은이에게 소소하지만 직접 만든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싼 입맛에 뭐든 잘 먹지만 '한식'이라는 두 글자에 홀린 듯 숙소를 나왔다. 이름 모를 한국분이 보내주신 주소는 작은 카페였다. 그리고 영어로 김밥, 라면, 떡볶이라고 써진 입간판이 있었다. 직장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처럼 쭈뼛쭈뼛 가게 안을 들어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를 초대해주신 두 분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하셨다. 남편분의 왜 여행을 하는지, 왜 터키로 왔는지, 어떻게 여행하는 중인지 궁금해 하셨고 물음에 대답하며 이야기를 하던 중 아내분이 대화를 끊으며 말씀하셨다.
 '배고프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니는 거 같은데?'
 찔렸다. 대충 끼니만 해결하며 13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것을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지난 여행 일정은 광대는 더 높게 턱선은 더 각지게 만들었고 매일 아침 양치를 하며 나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네.'
 짧은 대답과 멋쩍은 웃음을 짓자 아내 분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씀하시곤 급히 주방으로 가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한국 음식이.
 '라면이랑 참치 김밥이야. 더 해주고 싶은데 가게를 시작한 지 며칠 안돼서 재료가 이것밖에 없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려 입을 벌린 김에 라면을 넣었다. 너무 맛있었다. 맛이 어떻고 식감이 어떻고는 필요 없이 그냥 맛있었다. 허겁지겁 그릇을 설거지하듯 비웠고 남편 분과 못다 한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은 원래 터키에서 가이드를 하시고 계셨고 비수기와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사정으로 가게를 하시게 됐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음식 주문으로 주방에 다시 들어가셔야 할 때 가게에 있던 한국어를 공부하는 터키 친구들을 소개해 주셨다.
'안녕하세요.'
 터키 친구들은 반가워했다.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고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나는 터키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터키 친구들은 '최근 이즈미르 지진 기사의 나쁜 댓글을 다는 이유', '한국 사람들은 무슬림 모두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이유'처럼 다소 무거운 궁금증부터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하면 BTS를 좋아하냐고 묻는 이유.', '터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처럼 다소 가벼운 궁금증까지 많은 질문을 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나도 몇 가지 물었는데 첫 번째는 '터키의 수많은 모스크는 도대체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는지.'였고 친구들의 대답은 '나라에서.'였다.
 두 번째는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쓰는데 터키 무슬림 여성들 중 쓰지 않은 사람도 있는 이유.'였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꽤 길었다.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개혁으로 칼리프 제도와 히잡 착용 의무화를 폐지시키면서 히잡에 대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무슬림으로써 보수적인 사람들이 히잡을 쓰는 건 맞지만 히잡을 쓴 모든 사람이 보수적인 건 아니야. 그리고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보수적이지 않고 무슬림이 아닌 것도 아니야. 본인은 쓰기 싫지만 부모님이 엄격한 경우에 쓰기도 하고 히잡을 쓰지 않았어도 매시간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은 개방적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해.' 
맞는 말이었다. 나는 터키의 칼리프 제도가 폐지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기 시작했다는 건 알았지만 히잡에 대한 어느 정도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질문을 했다.
 세 번째는 '진심으로 한국은 터키와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지.'였다. 친구들은 앞다퉈 말하려 하다가 순서를 정해서 말했다.
 '내가 한국에서 음식점을 갔는데 터키 사람이라고 하니까 돈을 받지 않았어. 너무 감동적이었고 한국은 형제의 나라야.'
 '나는 먼저 한국은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 이즈미르의 지진 기사에 달린 글들을 보면 한국은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해.'
 '솔직히 터키의 형제의 나라는 아제르바이잔이야. 많은 터키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이라는 어머니의 두 아들이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한국이 형제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모든 걸 버리고 낯선 나라 한국을 돕기 위해 전쟁터로 떠났던 터키 참전용사들과 이스탄불 대지진 때 의료와 구조를 목적으로 지원했던 한국 봉사대. 이 아름다운 장면 위로 겹쳐지는 건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100명 이상 세상을 떠나게 했던 이즈미르 지진에 대해 잠재적인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숫자를 줄인 것이니 잘 된 일라며 떠들던 멍청한 덧글이 떠올랐다.

 마지막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였다.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해줬다. 
 '처음에는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미 영어는 많은 사람들이 잘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아시아 언어를 공부하려고 했고 가장 친숙한 한국을 선택했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보게 됐어. 그리고 나중에는 자막 없이 보고 싶어서 공부했어.'
 '대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어.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고 나는 춘천에서 교환 학생으로 6개월 간 지냈어. 그리고 터키에 돌아와서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됐어. 남자 친구가 한국사람이거든.'
 각자 다른 동기로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세 친구에게 같은 이유도 있었다.
 '한글은 이쁘잖아.'
 뿌듯했고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고마워. 한국을 좋아해 줘서.'

 올림포스 산과 키메라 그리고 많은 명소들을 두고 안탈리아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까맣게 탄 배낭 여행자를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음식을 주셨던 두 분을, 형제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라는 이유로 선입견 없이 이야기했던 친구들을 가득 안고 기분이었다.

여행의 진짜 맛은 역시 사람이구나 싶다.

대비되는 삶을 살아온 흑인과 백인의 우정을 그린 영화 언터쳐블 : 1%로의 우정의 배경음악. 미국의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음악을 했던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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