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았다.

2021. 2. 24. 16:42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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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남쪽 지중해 연안은 겨울에도 춥지 않다고 터키 친구들이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한파를 수십 년 겪어온 나에게는 춥지 않은 날씨가 아니라 여름 문턱에 들어서기 전 선선은 아니지만 덥지도 않은 딱 늦봄 날씨였다. 욀루데니즈의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따가워 선글라스를 끼고 하늘에 떠있는 패러글라이더 아래를 걸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첫 등교를 할 때, 첫 해외여행 때 공항버스에 올랐을 때 느꼈던 긴장과 두근거림을 오랜만에 느꼈다. 드디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좀처럼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나이 20살에 가까워 놀이기구를 처음 경험해 보고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놀이공원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던 터라 당연히 '그깟 놀이기구쯤이야.'라고 생각했고 당당하게 탔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눈을 질끈 감은채 고함을 마지막까지 질렀다. 놀이기구에서 내리고 나서는 안전바를 부서질 듯 잡은 손이 저렸고 다리에 힘도 없었다. 그 후로 놀이동산은 가지만 놀이기구는 타지 않게 됐다. 이런 내가 수천 미터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는 이유는 경험하기까지의 과정이 가장 간단한 것부터 나열한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것이 욀루데니즈 패러글라이딩이었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라는 계단의 첫 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2시 패러글라이딩 샵에 갔고 나 외에 국적 모를 3명의 여행자가 더 있었다. 여러 문진표를 작성하고 안전교육을 받고 패러글라이딩의 출발지인 Babadağ산으로 출발했다. 패러글라이딩 강사들과 함께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서로의 파트너를 결정했다. 카드를 선택했고 카드에 적힌 번호로 서로의 파트너가 결정됐다. 파트너를 결정하고 5분쯤 지나자 구름이 발아래 깔린 출발지에 도착했다. 점처럼 보이는 욀루데니즈의 모습에 긴장이 극에 달했고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나의 파트너 강사는 긴장한 나를 보며 한참을 웃다가 이야기했다.

 "선글라스 꼭 써야 해 눈이 많이 부실 거야.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마. 내가 '달려.'라고 하면 달리고 '앉아.'라고 하면 앉기만 하면 돼."
 "이거 정말 안전한 거 맞지? 떨어지면 어떻게 해?"
 파트너 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는 거지."
 대답을 듣고 나는 죽상이 됐다. 내 얼굴을 보던 파트너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장난이야. 걱정하지 마 친구. 나는 프로라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차례가 왔다. 패러글라이더가 가지런하게 바닥에 깔리고 난 뒤 파트너가 말했다.
 "달려!"
 나름 어린 시절 육상부로 여러 번 입상했던 나는 그때보다 더 힘차게 도움닫기를 했다.
 "앉아!"
 달리고 앉기를 하기까지 10초 남짓 그리고 구름 속을 지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파랗게 빛나는 블루라군을 향해 Babadağ산 위를 날고 있었다. 10분 정도 날아서 패러글라이더는 전날 늦은 점심을 먹으며 올려다봤던 그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파트너는 겁이 많은 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회전하고 떨어지듯 날기도 했다.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계속 보게 되는 공포영화처럼 너무 무서웠지만 풍경을 놓칠 수 없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땅이 야속할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욀루데니즈 해변 앞에 착륙하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감이 주는 소름이 발바닥에서 어깨까지 훑고 지나갔다. 

어쩌면 나에게 패러글라이딩은 도전이었다. 그 흔한 바이킹 한 번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겁쟁이가 수천 미터 상공에서 회전하고 떨어지며 수십 분을 날았다. 남에게 하찮을 수 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핸드폰 메모장에 적힌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웠고 덴젤 워싱턴이 했던 연설 중 한 부분이 떠올랐다.

'If you don't fail, you're never even trying.'
'만약 당신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통통 튀는 사운드와 'Happy'라는 한 단어로 쌓아지는 코러스가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노래 Pharrell Williams의 Happy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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