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2021. 2. 25. 21:22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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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중해에 대한 환상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둘러 쌓인 이 바다는 프랑스의 몽쉘미셸과 스페인의 이비자, 이탈리아의 아말피와 친퀘테레, '꽃보다 청춘'으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등 아름다운 도시들과 함께 빛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짐을 꾸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놓인 터키도 지중해를 품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나는 터키의 에게해 연안을 지나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터키 친구는 보드룸이라는 곳과 카쉬라는 곳을 추천했었다. 보드룸은 에게해의 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고 카쉬는 지중해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이라는 목표만 생각하고 달려온 나는 보드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고 패러글라이딩을 경험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하지만 보드룸은 이미 지나온 먼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카쉬를 가기로 결정했다.

 카쉬는 페티예에서 지도상으로 3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완행이 대부분인 터키의 버스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된다. 대략 4시간 반 정도 걸려 칼칸이라는 카쉬 옆 도시에 도착했고 칼칸에서 카쉬로 돌무쉬를 타고 이동했고 페티예에서 카쉬까지 총 5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왜 저렇게 긴 시간이 더 들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차이를 사랑하는 터키 사람들은 정차하는 도시에서 항상 차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터키를 여행하실 때 이 문화를 이해하는 마음을 조금만 가진다면 차이의 매력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유로운 이동을 해서 도착한 카쉬는 정말 작은 도시였다. 작은 항구 너머로 지중해가 빛나고 있었고 작은 광장에는 강아지들과 꼬마들이 공을 차고 주변의 펍에서는 기타 연주가 들렸다. 나는 광장과 항구가 보이는 발코니를 가진 숙소를 예약했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로 향했다. 광장 근처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오르막이었는데 길까지 미로 같아서 지도 애플리케이션만으로 찾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현지인 찬스를 쓰기로 했다. 자신의 가게 앞에서 차이를 마시고 계신 분이 눈에 들어왔고 이런 상황을 위해 연습한 문법도 발음도 엉성한 터키어로 입을 뗐다.
'저는 주소로 가야 합니다.'
'오! 한국 사람이세요?'
'네. 한국 사람입니다. 터키어 못해요.'
'이 쪽으로 올라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터키어 문장 '감사합니다.'를 마지막으로 오르막을 더 걸었고 숙소에 도착했다. 

 터키 여행에서는 이런 상황이 많았다. 유럽의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상대방이 내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아시아인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전부라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 '곤니찌와.'나 '니하오.'라는 인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한국인임을 일일이 다시 이야기했고 나중에는 스스로 '곤니찌와.'라는 인사에는 일본인이 되기도 하고 '니하오.'라는 인사에는 중국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나 '한국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먼저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이라고 다시 말해야 하지 않아도 됐고 일본인, 중국인이 되지 않아도 됐다. 사소하지만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카쉬에 오기 전까지 터키어 읽는 법과 아주 기본적인 문장을 연습했다. 하지만 직접 터키 사람에게 터키어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터키 친구에게 물었다.
'터키어를 조금 공부했는데 내가 터키어로 말하면 알아들을까?'
 터키 친구가 말했다.
'넌 딱 봐도 외국인이잖아. 괜찮을 거야. 그리고 만약에 네가 한국에서 여행하는 외국인이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로 길을 물어보면 어떨 것 같아?'
'당연히 길을 알려줘야지. 그리고 너무 고마울 것 같아.'
'똑같아.'

 용기가 났다. 그리고 오늘 숙소를 찾으면서 나눈 짧은 대화가 인생 첫 터키어 대화였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소통했다. 뭔가 모를 뿌듯함을 숙소 오르막을 오르면서 느꼈고 좋았다. 내가 귀찮음에 스스로 한국인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준 모든 터키 분들에게 그리고 나의 개떡 같은 터키어를 찰떡 같이 알아듣고 길을 알려준 아저씨에게 다시 한번 이 말을 전하고 싶다.

'Çok Teşekkür ederim.(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 이 여행을 감사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 듀오, 로봇 같은 헬멧으로 상징되는 Daft Punk의 Get Lucky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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