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 창피했다.

2021. 1. 23. 15:59Yoonguevara in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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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한국이 싫어질 것 같아."

 지진을 겪은 후 이틀이 지난 아침 터키 친구들이 하나 같이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도, 한국이 좋아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대가 없이 도움을 주는 친구도, 한국인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 중인 친구도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터키 지진을 다룬 우리나라 인터넷 기사 댓글을 캡처한 사진들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터키도 이슬람이잖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죽어도 괜찮아.'
 몇몇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일컬으며 지진으로 인한 터키 사람의 죽음을 합당하다고 말했다. 한 동안 저런 댓글들이 상단에 머물러 있었고 한 명의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라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이 터키 친구들을 실망시킨 것이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안함을 느껴야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K-Pop과 K-Drama 이 모든 것을 포함한 한류라는 문화적 흐름을 기회 삼아 외국인 여자와의 성적인 관계를 언어교환 애플리케이션에서 찾는 한국 남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중 외국인 여성 가이드와의 잠자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한 두 명씩은 꼭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국 여행을 하던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어를 모를 거라는 생각으로 한국인이 했던 차별적인 이야기 등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안함을 느끼게 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겪었던 일도 있다. 크로아티아를 여행 중이었고 간단한 요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기 위해 절벽에 위치한 카페에 갔다. 추가 요금을 내고 푸른 지중해 뷰와 흡연을 할 수 있는 카페의 명당자리에 앉았고 맥주를 마시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뒤 한국인 가족이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 난 가이드 북을 펴고 다음날 일정을 계획하며 담배를 피우려 했다. 불을 붙이고 정확히 두어 번 태웠을 때 뒷자리 한국인 가족 중 한 명이 비꼬는 듯이 말했다. 

"어우. 한국 사람이 사람 많은 데서 담배를 피우네?"

 '한글로 된 내 책을 봤나 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바로 담배를 껐다. 그리고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흡연이 가능한 곳이 맞는지, 혹시나 그 가족들 중 어린아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직원에게 흡연이 가능한지 한 번 더 물어봤고 직원은 '당연하지.'라고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라는 동작을 취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재떨이가 있었고 재떨이 속에는 담배꽁초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 가족들 중 어린아이도 없었다. 직장인인 듯 보이는 두 명의 자녀와 부모님 두 명 이렇게 네 명이 있었다. 미안함을 가지지 않아도 될 일에 한국인이기 때문에 억지로 미안함을 느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겪었던 여러 종류의 미안함과는 다르다. 그 어떤 미안함이 아니라 창피함에 가까웠다. 지진으로 어린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집을 잃었다.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이 세계 여러 곳에서 테러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가슴 아픈 사건인 미국의 911과 최근 프랑스에서의 테러처럼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터키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까지도 테러로 인해 고통받았고 고통받고 있다. 축구 경기장 근처에서 29명의 사망자와 166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폭탄 테러가 있었고 터키 정부는 테러와 관련된 모든 인물을 직위와 사회적인 위치 상관없이 모두 체포하고 있다. 계속해서 발견되는 테러 계획들로 인해 이스탄불의 탁심, 아야 소피아 등 사람이 많은 곳은 무장한 경찰들과 장갑차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또한 터키는 국교를 폐지했고 모든 자국민이 이슬람을 믿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을 사랑하는 터키 친구들에게 상처 낸 날카롭고 몰상식한 댓글을 나와 같은 한국인이 썼다는 게 창피했다. 그래서 터키 친구들에게 대신 사과했고 댓글들이 모든 한국인들의 생각이 아닌 소수의 나쁜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진으로 인해 다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무슬림도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동양인 차별에 치를 떨면서 정작 자신이 '백마', '흑형'등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별 짓는 것은 인종차별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 담뱃불을 끄게 했던 한국인 가족처럼, 이슬람이면 모두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모르면 볼 수 없다. 내 여행으로 그리고 여행으로 인해 쓰이는 솜씨 없는 이 글이 볼 수 없는 곳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만드는 창문이 되길 바란다.

 

생각과 배려가 없는 글은 더 날카롭다. 

 

지진으로 인해 다치고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의 평화를 진심으로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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